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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내소사 입장료 주차장

ozia6 2025. 5. 20. 07:32
부안 내소사 입장료 주차장 조회

 

부안 내소사 입장료 주차장 조회하기 ▶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에 위치한 내소사는 신라시대 고승 혜구(惠丘) 스님이 창건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풍부한 역사와 문화적 유산을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불교 사찰입니다. 이 사찰은 백제와 신라, 고려, 조선을 거쳐 오늘날까지도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전통 사찰로, 오랜 세월 동안 지역 불교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습니다.

 



내소사는 조선 전기 문헌에서는 ‘소래사(蘇來寺)’로 기록되어 있으며, 1481년(성종 12년)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부안현조에 따르면, “소래사는 신라시대 혜구가 창건하였으며, 크고 작은 두 개의 소래사가 존재한다”고 하여 ‘대소래사(大蘇來寺)’와 ‘소소래사(小蘇來寺)’가 함께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는 내소사의 기원이 오래되었으며, 당시에도 이미 상당한 규모와 명성을 지녔음을 나타내는 기록입니다.

 



1851년에 작성된 「내소사 사자암 중창기」에 따르면,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이 변산 일대를 지나던 중 이 지역의 수려한 자연경관에 감탄하여 암자를 짓고 머물렀으며, 이후 그의 이름 ‘소(蘇)’자와 ‘온다(來)’는 의미의 ‘래(來)’자가 결합하여 ‘소래’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전합니다. 다만 이 전설적인 설화는 역사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아 학술적으로는 신중하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이르러 내소사는 여러 문인과 고승들로부터 주목받은 장소로, 다양한 시문이 남아 전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문인 이규보(李奎報, 11681241)는 1200년(경신년) 8월 20일 부친의 제사를 지내기 하루 전날, 변산 소래사를 찾았다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는 사찰 벽 위에 적힌 자현거사의 시를 보고 감흥하여 이에 화답하는 시 두 수를 지어 벽에 남겼다고 합니다. 또한 고려 후기 고승 원감국사 충지(冲止, 12261293)는 “의상암은 높이 솟아 하늘과 닿고, 자씨당은 깊숙하여 돌로 된 문처럼 웅장하다”는 시구를 통해 내소사의 고즈넉하고 깊은 산중 풍경을 예찬하였습니다. 선탄(禪坦) 또한 “두견새도 달이 아름다운 서루를 좋아하여, 밤이면 배꽃 핀 가지 위에서 울고 있다”는 시를 통해 내소사의 운치 있는 야경을 노래하였습니다. 이처럼 고려시대 내소사는 문인과 승려들에게 자연과 수행의 이상향으로 인식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찰 명칭과 관련해서는, 본래 ‘소래사’로 불렸던 이 사찰이 언제부터 ‘내소사(來蘇寺)’로 불리기 시작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조선 전기의 문인 김시습(14351493)이 남긴 『매월당집(梅月堂集)』에는 ‘내소사’라는 명칭이 등장하고 있어, 15세기 중반부터 ‘내소사’라는 명칭이 점차 사용되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혼용된 기록들이 존재하여, 1606년에 간행된 기준(奇遵, 14921521)의 『덕양유고(德陽遺稿)』나 1688년에 간행된 이정귀(李廷龜, 1564~1635)의 『월사집(月沙集)』 등에서는 여전히 ‘소래사’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내소사’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정착된 시기는 1700년에 조성된 「내소사 영산회 괘불탱」의 화기(畵記)에 ‘내소사’라는 이름이 명시된 것을 근거로 추정됩니다. 이는 내소사의 명칭이 18세기를 전후로 하여 보다 널리 정착되었음을 시사하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됩니다.